끄적끄적 독서노트

황정은-연년세세

오후의 체셔캣 2021. 2. 12. 15:55

연년세세(年年歲歲)

황정은

 

가족이란 무얼까 싶은 생각이 혈연으로 뭉쳐졌지만 전혀 마음이 맞지 않는 그래서 더욱 고통스럽기도 하고 뻔한 속내가 읽혀서 편하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불편한 그래서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이 옥죄어 오는 듯해서 마스크처럼 갑갑해지며 쉽게 벗어날 수도 없어서 체념하며 외면하기도 하지만 저항도 소심하게 해볼때도 있습니다.

앞선 미미여사님의 책중에 사고뭉치 민폐녀 언니로 인해 낙인이 찍혀서 불행해진 동생이 저질러버린 일을 동정했던 맥락과도 같네요.

여기선 같은 부모에서 태어난 삼 남매는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각자가 다른 주관과 성향을 지녀서 장녀인 한영진, 차녀 한세진, 막내아들 한만수는 이순일이라는 엄마를 중심으로 뻗어나간다. 이 네 가지의 이야기 속에 가족 내의 역할에 따라 고통받는 한국가정을 나타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파묘>는 엄마 순일에게 가장 오래 남아있던 유일한 혈육인 외 할아버지의 성묘를 해마다 다녔지만 이젠 순일 자신의 다리가 망가져 수술을 할 수밖에 없는데다 보행이 어려워져서 파묘를 결정한다. 예전엔 관도 없이 묻힌 외 할아버지의 검은 덩어리를 제사를 채 지내지 못하고 화장하고 수습해버리는 마지막까지 차녀 한세진이 동행을 하며 지켜보죠.

 

<하고 싶은 말>시장에서 일하던 부모님이 계주가 도망을 간 여파로 형편이 어려워지자 장녀 영진은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백화점 영업직을 택해 실질적인 가장이 된다. 결혼 후에도 자녀들을 엄마인 순일 씨가 맡으면서 아래층으로 이사를 하고 두 집 살림을 맡고 장녀의아이들을 키운다. 그러나 자신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고 엄마가 그랬지만 막내나 차녀는 적용되지 않았기에 섭섭한 마음이 한편에 남아있다. 아들 만수는 한국에서 취업을 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그곳에 정착하려는 남동생에겐 별다른 제재가 없는 점도 화가 나고 생활공간에 가득한 용품들도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엄마 순일이 가장이 된 영진에게 차려준 밥상이 책임과 의무로 큰딸에게 다가와 잠시 돌아온 막내가 이야기하는 엄마의 희생과 노동에 대한 치하나 자신의 출산으로 인해 느닷없이 강요당하는 모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싶네요.

 

<무명> 엄마 순일의 삶은 고비마다 그냥 주어지거나 안정되지 못한 삶의 연속이다. 칠순에도 여전히 노동에 헐떡이며 살아가는 그녀에겐 전쟁고아로 간신히 살아남고 그 후에도 동생을 돌보지만 사고로 잃고 느닷없이 혈육이라며 찾아온 고모의 집에 식모살이를 하며 갈취당한 노동에 지쳐 결혼을 선택한 순일씨는 자식들에게 이야기로도 전하고 싶지 않고 그런 일들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아마도 내가 보던 프로 중에 어떤 배우분이 그러더군요. 정말 아프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그말이 무슨 말인지 알것도 같네요.

 

<다가오는 것들>무능한 차녀 세진은 실제로는 가장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사는 듯합니다. 형부와 언니가 있는 곳을 떠나 자신의 길을 가며 마치 형부의 집 앞 주차장 앞의 차를 못 대게 설치한 구조물의 잔해인 못이 나타내듯이 생채기를 내는 형부를 피해 자신과 함께 사는 친구의 건강을 돌보고 미국의 친척과의 간간한 안부와 만남에서는 한국의 입양아 이야기가 나오고 양공주였던 친척의 이야기가 나오죠. 살림을 배우기 원하는 엄마 순일과 자신의 영업직을 배우라는 장녀 영진의 말을 수용하지 않고 독립적인 어른의 삶을 이어가죠. 그것이 땅에 떨어진 것을 줍는 정도라고 할지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르는 노고와 고유한 고생을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것 같게 느껴집니다.그래서 그녀는 타인의 생에 섣부른 평가와 참견을 하려 하지도 않는 것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