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알베르 카뮈
삶이란 도대체가 무얼까요? 왜 살아가고 있는 건지 생각을 해보지만 답을 내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삶이니 최대한 민폐는 끼치지 말고 없는 듯이 살다가 흔적 없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쉽지는 않다 생각합니다. 삶이 주어졌으니 산다고 해도 이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굳어져 버린 삶에 화가 나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코로나로 죽어가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과 충격적인 일들을 마치 이것이 지금의 세상이라며 보여주는 자극적이고 암울한 뉴스들, 개인적 일상에는 삶의 의미가 없는 듯한 허무감, 고통의 끊임없는 반복 등에서 저의 몸은 지치고 힘에 부치는 때엔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낭떠러지인듯한 착각마저 드네요. 기대고 싶은 가족들은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고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줍니다.
희망의 부재와 의식적인 불만을 전제로 한 삶에 과연 몰입이란 걸 할 수조차 있는 건지 되묻고 싶습니다.
세계는 난폭하고 몰지각하며 내 이해 따윈 바라지도 않거니와 별개의 모순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작가가 말하길 " 만약 인간 사고에 대한 단 하나의 유의미한 역사를 써야 한다면,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후회와 무기력의 역사" 일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육신은 죽음 앞에서 뒷걸음질 칠 수 없는 진전을 계속해서 죽음에 이르고 있는 모순과 회피하려 희망을 가진다 쳐도 삶을 초월하며 이상화해봐도 위대한 이념과 내세에 대한 희망으로 포장한 속임수로 사탕발림을 해봐도 삶을 걸진 못한다고요.
거대한 바위를 산비탈로 굴려 올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벌을 받는 '시지프' 그는 아무리 그 일을 해내어도 얻어지는 것은 없는 그의 삶이 인간이 살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으로 비치는 셈입니다. 그러나 반항하는 인간으로 인간 조건에 경멸을 보낼 수 있을 때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없음을, 그것이 삶의 행복일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한편에선 부정이란 카드를 내밀며 다른 한편으로 열광이란 카드를 보이는 것, 이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창조자 앞에 펼쳐져서 자신의 조건에 맞서는 끈질긴 반항과 성과 없는 노력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집요함 속에서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가 아닌가 싶어지네요.
사족으로 예전에 만난 어떤 분이 저에게 카뮈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길래 알려주진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어떤 분이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비호감이라서 저에게 대놓고 비난을 하며 깔아뭉개려고 하는 의중이 뻔히 보여서 더 말하고 싶지 않은 셈이겠지요. 니까짓 것이 무얼 알기나 하냐고 힐난하는 것이 표정으로 쓰여있어서 말이죠. 아마도 앙심은 더 오래 남아서 이렇게 마음의 앙금이 된 것을 여기에 털어놓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분에 다시 묻는다고 해도 여전히 제가 왜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나의 얇고도 가는 지식으론 이해하기 힘들지만 동경으로 좋아하는 것일 테죠.라고 이야기하겠죠. 여전히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책을 읽어도 잘 모르고 이해 못 할 소리를 써대는 지금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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