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독서노트

신유진-열다섯 번의 밤

오후의 체셔캣 2020. 1. 19. 13:43

 

 

열다섯 번의 밤

신유진


 온 동네에 가로등 하나 남김없이 불이 꺼지면 어둠은 덩어리가 되어서 찾아온다. 산 능선을 넘어 슬그머니, 마을 아래 도로에서부터 낮은 포복으로 밤이 찾아왔다. 심연처럼 캄캄하여 머리와 꼬리가 구분되지 않는 밤은 제멋대로 검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치고 맨발로 뛰어놀았다.      -P.85 中에서


 "성냥을 쌓듯이 살면 되는 거야. 무너지면 어차피 성냥개비인데 뭐. 그렇게 생각해 버려. 다시 쌓으면 되잖아. 재미있게. 천천히, 다 쌓아봐야 성냥인데 또 못 쌓으면 어때?"     -P.157 올리비에의 성냥개비 지론 中에서


슬픔을 나누는 것과 불행을 나누는 것은 다르다. 슬픔은 위로를 원하지만, 불행은 불행 자신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행한 상태, 그 자체를 가장 좋아하며 변화를 싫어하고 매우 친화적이어서 어떻게든 자신이 있는 쪽으로 모두를 끌어당기려 한다.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불행이란 놈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 귀를 막고 달아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하 중략) 불행을 버리고 가면, 불행과 함께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불행을 버리고 사람을 끌어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런 기술을 배우고 싶다. 사람의 말과 불행의 말을 구분하는 법, 사람의 마음과 불행의 마음을 알아보는 법, 그것을 안다면 예의 없이 손을 내미는 불행에게 완벽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행한 사람을 구하러 갔다가 불행에 빠져 죽지 않고 사람만을 건져오는 법,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절실하다.   -P.191 中에서

;절대로 같이 있지 말라고 말리고 싶다. 나조차도 깊은 불행의 심연으로 빠져버리니 말이다.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피하라고 하고 싶다. 당신도 같이 불행해진다고.


 아이다운 아이인 적도 없었지만, 어른스러운 어른도 되지 못한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피터 팬 증후군과는 다르다. 아이인 적이 없었으니 피터 팬처럼 천진한 판타지 세계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것도 아니다. 그럴만한 계기와 시기를 놓쳐버린 (이하 중략) 그러니 실패한 성장의 맛만 혀끝에 남은 게지. 신맛도 쓴맛도 아니다. 그저 조금 떫다.  -P.239~240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