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P.14 中에서
100년에 걸친 증조모, 할머니, 엄마에서 나로 이어지는 모계의 파란만장한 역사.
희령이라는 곳은 가공의 도시인 줄 알았는데 강원도 회양 지역의 옛 지명이라고 하는데 지명만 빌려왔거나 우연히 겹쳐진 듯하기 하기도 하다. 북한에 있다고 하는 썰이 있던데 회양이란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주인공인 서른두 살의 지연은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희령의 연구소로 이직을 했다.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보고 응시를 한 것이었는데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되고 부모님조차도 딸의 고통보다는 혼자 남을 사위의 편에 서니 마음 둘 곳이 없는 그녀로써는 엄마의 간섭을 피한 도피인 셈이다. 지연에게 마음을 써주는 친구 지우뿐인 바닷가의 작은 도시 희령은 엄마의 친정이며 그녀로써는 열 살 무렵 할머니에게 열흘 정도 맡겨졌던 기분 좋았던 추억의 장소였던 것이다.
무슨 일인지 엄마와 할머니의 사이가 소원해져서 이십 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할머니와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서 재회하고 할머니와 대화를 이어가다 할머니의 엄마인 증조모와 증조모의 친구 새비 아주머니로 불린 사람과의 사진을 보며 증조모와 할머니가 어떻게 개성을 떠나 희령으로 오게 된 과정을 이야기한다.
증조모는 아픈 고조모와 함께 살며 역전에서 옥수수 행상을 하다가 일제 때 위안부로 끌려가려 한 것을 증조부가 구해주었으나 자신의 가족을 등졌다는 생각에 증조부는 증조모와 딸에게 정이 없었다. 그러나 새비 아저씨라는 사람에게 아픈 고조모를 돌봐달라고 했지만 얼마 후 고조모는 죽게 된다. 후에 일제에 땅을 빼앗기고 빚으로 새비 내외가 개성으로 오고 새비 아주머니와 친구가 되지만 새비 아저씨가 돈 벌러 일본 히로시마에 일하러 가서 피폭으로 인해 어렵게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건강이 나빠져서 고향으로 가서 죽게 되고 그 후에 새비 친정 오빠가 사상범으로 죽게 되자 시댁에서 쫓겨나고 개성으로 오지만 증조모는 새비 아주머니의 사연을 듣고 보낸다. 전쟁으로 피난을 가야 해서 증조부의 친척이 있는 서울에 가지만 폭격으로 재만 남아있고 새비 아주머니의 고모가 있는 대구로 피난을 가서 그곳에서 피난생활을 하게 된다.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증조부는 군에 가고 대구에서 명숙 할머니 집에서 바느질을 배우게 된다. 군에 만난 고향 동무가 부모님과 형님을 만났는데 피난길에 오르신 것을 봤다며 희령이란 곳에 있다고 했으나 증조부의 부모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정착을 했고 증조부는 자신과 동향이라며 할머니와 길남선이란 자를 결혼 시켰으나 딸을 낳은 후에 그가 북에서 결혼을 한 유부남이라는 사실과 그가 사과조차 하지 않고 본처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지연의 전 남편이던 작자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한다고 그러니 일어날 일들이 일어난 셈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좀 속이 편해지려나 싶은 생각도 든다. 증조모는 할머니를 알고도 중혼시킨 증조부를 원망하고 할머니는 눈에 띄지 말고 죽어버리라고 했다고 그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증조부는 버스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했을 때 오히려 할머니가 받을 마음의 상처가 더 클 것 같아서 걱정스러웠다. 또한 새비 아주머니는 딸 희자에게 갈수 있는 한 멀리 가라고 했다던데 그러고 보니 내 어머니가 나와 동생에게 사준 황금색 지구본이 생각이 난다. 아마도 당신의 딸인 내가 보다 더 먼 곳을 보길 원하셨으리라 생각이 되면서 아직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는 작은 내가 미안해진다.
지연의 직장 상사가 일적인 실수만 지적할 것이지 사적인 영역까지 끄집어내어 기어이 판단과 지적을 하는데 어이가 없게 느껴진다. 왜 거기에 사적인 일이 섞이는 건지 제발 일만 좀 하자고 하고 싶었다. 네가 씹으라고 있는 사생활이 아니라고 대신 화를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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