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독서노트

권여선-아직 멀었다는 말

오후의 체셔캣 2020. 8. 29. 14:47

아직 멀었다는 말

권여선

 

"아무 기댈 곳도 없고 아무 쥘 것도 남지 않은 이제 와서야 그는 비로소 겉돌던 세상의 틀 속에 겨우 들어앉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  <재> P.221 中에서

 

"가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아무와도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응이란 말조차 하기 싫을 때..." - <전갱이의 맛> P.225 中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비극에 대해 분노를 느끼고 차별에 함께 분노하고 혐오와 편견을 응시하며 야만과 폭력을 규탄하고 응징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타인이 겪었을 고통과 슬픔을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은 우리를 아무 데나 데려다 놓고 아무 때나 내팽개치지 않는가?

 <손톱>에서의 소희에게 한없는 슬픔을 느끼며 역시 '인간은 믿는 게 아니야. 피를 나누었다고 해도 말이다'라고 옆에서 악마처럼 속삭여줄 수도 없지 않나 싶다. 그저 그녀처럼 함께 계산하고 언니가 빚을 남기고 떠나서 대신 빚을 갚게 되는 상황의 소희처럼 강박적으로 같이 계산하며 답답한 현실에 머물 뿐이다.

 현재가 아니라 지난날의 과거를 미화할 수 있는 생의 총량이 정해져 있을까? 어린 시절이라고 다 아름다울까? 언젠가 한 번은 행운의 기회가 올 것 같아서 비참한 오늘날을 견디어 넘기는 것이리라.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한 번은 하려나? 아마도 그러해서 끝까지 살아내는 이들이 있는 거겠지 싶어진다. 하지만 그러기엔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걸로 합의를 본 것만 같지만 말이죠.

 제목처럼 나에겐 인간으로서의 수양이 아직 멀었다는 뼈때리는 말로 들릴 뿐이다. 마음이 좀 더 긍정적이고 싶지만 사람이 베푼 호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여야 하기엔 내 상처는 한없이 깊고 깊다.

 항상 뒤끝이 좋지 않았기에 더욱더 말이다.

 

 몇 년 전엔 자기네 집 시원하자고 에어컨 두대 달면서 실리콘을 제대로 않발라서 우리 집 천장에 금가게 해서 비오면 빗물보게 해주고 그 수리비가 40만 원이 넘게 들게 한 윗집 부부와 시아버지란 작자로 인간성이란 것이 있는 걸까 의문을 품었고 끝까지 우리 집이 마치 층간소음을 못참고 해꼬지를 하는 것처럼 마지막까지도 욕을 그렇게 하고 가더라고요.

이사를 가기 전날까지 12시쯤 되면 윗집에서 작두를 타더라고요. 애인지 남자인지 둘다 그러는 건지 말이죠.

그러곤 우리 집에서 층간 소음으로 난리를 쳐서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더라고요. 그러면서 처음 이사 왔을 때 떡을 돌려서 그 뒤에 팥떡이라면 치가 떨리도록 했죠. 아직도 그 떡이 목구멍에서 내려가지 않고 꽉 막혀있는 기분으로 살고 있죠. 자신들은 그 떡으로 입막음을 했다고 하면서 말이죠. 전 분명히 일이 잘 풀리라고 슈퍼에서 휴지와 아이 간식을 사서 그분이 주신 것보다 더 비싼 것으로 사서 드렸는데 말이죠. 암튼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만 남긴 일이었죠.

 그 뒤 이웃의 이자만 들어도 신경 끕니다. 소음도 담배연기도 꾹꾹 참고 있고 말이죠.

12시든 5시든 소음에 시달려도 말이죠. 휴~

그냥 상종 못할 소시오패스가 살고 있다 생각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