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독서노트

김은경-습관의 말들

오후의 체셔캣 2021. 1. 11. 11:22

습관의 말들

김은경

 

살다 보면 이래도 글쎄, 저래도 글쎄, 하며 또 모른 척 적당해지다(이하 중략) 들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상대도 입을 닫고 한 걸음 발을 떼어 거리를 둔다. 그런 날은 좀 부끄럽고 씁쓸하다. -P.21 中에서

; 저런 편이 안전해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는 척 비겁해지고 있는 중인데 저도 뜨끔해지네요.

 

그나저나 반짝반짝 아름답던 것이 사그라지는 걸 지켜보는 건 참 안달 나게 애달픈 일이다. -P.49 中에서

 

그렇게 오래 쌓인 '알아 버림'으로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이 나를 보아줄 존재가 간절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론 누구와도 "가시에 찔리지 않을 정도의 적정거리"가 유지되길 바라는 나는, 나도 내 속을 모르겠다. -P.83 中에서

;저도 저런 존재를 만들고자 노력이란 걸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고 생활패턴이나 환경도 달라져버려서 소원해지고 반복이 되니 어느새 체념해버린 거죠. 저에겐 인간관계란 영원한 숙제 같아요.

 

아무리 오랜 삶의 습관도 건강에 따라, 바뀐 형편에 따라달라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순리에 따라서도 할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삶의 방식이 있다. -P.103 中에서

; 어머니가 아끼던 꽃들도 나이를 먹어서인지 이사로 인해 적응 못하고 죽었어요. 게다가 일부는 정리를 해야 했죠. 이 집은 테라스가 존재하지 않는 수준으로 전락을 해버려서 말이죠. 그러니 어머니는 내가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드시는지 이제 더는 화분을 사고 싶지 않다고 하시더라고요.

 

예전에 해외로 여행이나 출장을 가는 이가 혹시라도 뭘 사다 줄까 하고 물으면 꼭 그 나라의 책갈피를 부탁했었다. 좀 더 허물없이 친한 친구나 동료라면 엽서를 보내라고 집요하게 당부했다. 순한 사람들이 잊지 않고 책갈피도 챙겨 주고 엽서도 보내주어서 내 보물상자가 제법 그득하다. 한 번씩 나는 그 엽서들 속에 머물렀을 친구나 동료를 상상한다. 그래서 나도 여행을 가면 제일 먼저 위치를 봐 두는 곳이 우체국이다. -P.183 中에서

;저도 저러다가 부담스러워하며 도둑 여행을 가는 친구들로 인해 그 부탁도 접었습니다. 자기들은 나한테 잘도 면세점 부탁을 하면서 치~

 

버스 좌석에 앉아 별생각 없이 책을 펼쳤다가 내용에 훅 빨려 들어갔다. 햇빛이 적당한 가을 오후였다. 문득 둘러본 주변 풍경이 흡족했고, 그래서 책이 더 흐뭇해졌다. 한때 버스에서 책 읽기를 즐겼는데 언젠가부터 버스에서 책을 읽으면 속이 울렁거렸다. 울렁거리는 느낌이 꽤 고역이라 몇 년 동안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그날은 나도 모르게 책을 펼쳤다가 완벽한 평온함을 만끽하는 행운을 누렸다. 아쉽게도 그 행운은 다시 사라졌다. -P.209 中에서

;저도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이분과 동류의 인간인가 싶었네요. 살면서 마주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도플갱어가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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