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독서노트

스벤 슈틸리히-존재의 박물관

오후의 체셔캣 2023. 3. 25. 14:19

 

존재의 박물관

스벤 슈틸리히

 

"우리는 우리가 영원히 세상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안다. 우리가 없어도 세상은 계속 돌아간다는 것 역시 어렴풋이 짐작은 한다. 우리가 사라져 잠깐 삐거덕하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해는 다시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는 잊힌다. 우리는 매우 덧없는 존재다." -P.81 中에서

 

우리가 머문 자리, 우리가 누군가와 헤어질 때,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남기는 것들에 대하여 말한다. 때론 철학적이고 책, 영화,음악, 인물들의 말을 통해 전달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선 다소 날카롭게 들리기도 한다. 아마도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하나가 아닌 다중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일을 할 때의 웃지 않는 나와 친구들과 있을 때 웃는 나를 본 전 직장동료가 다음날 나에게 이야기 했지만 내 말에 그가 당황했던 때의 모습도 생각났다. 내가 웃는 모습과 내 답변 중에서 그는 어떤 것이 더 충격이었을까 싶지만 뭐 그때나 지금이나 그 사람의 생각 따윈 알바 아니다 싶었다.

과거의 물건들을 통해 추억을 떠올리며 그것을 동력으로 현재를 살아내는 힘을 내는 것인가 보다 싶은 생각을 해본다. (아님 말구!)

존재하는 이들은 뭐든 남기는데 DNA만이 아니라 인터넷상에서 그런 자국을 남기길 원하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 또한 나온다. 하긴 자신의 옛 연애나 전후 상황 없이 남겨진 SNS 상의 단편적 대화 등을 지우고 싶어 하는 이들의 시도조차도 자국을 남기며 선례가 되어 원치 않게 계속 사람들을 통해 오르내린다.

읽는 속도는 생각과 함께 하느라 느려지고 내가 남긴 내방의 잡다한 물건들을 보면서 생각을 한다. 이사로 인해 상당수를 버리고 와도 여전히 내 물건들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고 내가 다녔던 학교들과 밥벌이하던 곳들은 아마도 잘 있겠지 뭐.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은 잘 의식하지 않는다던데 난 대단찮은 교통사고로 인해 죽음에 대한 인식은 좀 변화한듯하다. 어느때든 알 수 없지만 나란 인간은 죽을 수 있다는 걸 현실적으로 인식하고 내 미래의 결말은 그것이 멀던 가깝던 답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 내 사후에 구질구질한 물건들을 치우기 피곤할 테니 이사를 할 때 가차 없이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버렸지만 인터넷에 있는 이 너절한 책 감상평은 누가 또 지워줄까 싶어서 우울해진다. 아마도 인터넷상의 저장된 사진이나 글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리가 필요할 것도 같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생기고 개인의 선명하고 행복한 단상들이 지워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어 선명하게 남아서 더 어지러워지는 듯하다. 지운다고 해도 지워진 건가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다. 좀 더 신중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