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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오후의 체셔캣 2024. 8. 18. 13:30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사회문제나 가족 간의 문제 등의 일곱 편의 단편집.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에서 대학 3학년에 나와 강의에서 만난 시간 강사인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 비정규직이었던 은행을 그만두고 대학에 편입을 하여 영문과 전공 수업을 듣던 나(희원)은 시간 강사였던 그녀의 수업을 들으며 그녀를 동경하고 롤 모델로 하며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한다. 아마도 희원은 그녀를 작은 희망의 빛으로 보았으리라.

"영어는 나와 관계없는 말이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 쓰던 말이 아니었다. 내게 상처를 줬던 말이 아니었다." -P.19 中에서

<몫>은 90년대 중반의 대학 교지편집부에서 동기로 만난 혜진과 희영 그리고 한 학년 선배인 정윤이 서로에게 준 영향에 대한 이야기. 그들에게 여성문제에 대해 너무 감정적이라고 하며 너는 피해자가 아님으로 모른다는 식으로 어설픈 공감이나 동정심으로 치부된다. 아마도 작가 또한 글 쓰는 것에 대한 고민을 오래도록 품으며 생각을 해왔던 건 아닌가 짐작이 된다. 또한 정작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이들은 사라지고 능력 부족한 자신만 남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 같아서 작가의 글을 읽는 저에겐 좀 서운하게도 느껴진다.

<일 년> 직장에서 선후배로 만난 지수와 인턴 다희는 함께 카풀을 하며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 된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공적인 공간에서 맺어진 관계여서 인지 곧 인턴 일이 끝나게 될 다희와는 친숙한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렵게 느껴진다.

<답신>두 자매 사이에 무슨 일로 언니가 아닌 조카에게 편지를 쓰는 건지 그녀들은 삶의 폭력으로 인해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는 자매가 폭력으로 인해 관계가 무너져버림을 개인으로는 폭력을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서 더 먹먹하게 느껴졌다.

"스노볼에 기어다니는 달팽이 같다"(-P.116 中에서)는 말에 마치 내가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던 순간들이 기억났다.

"벌써 백 년을 산거 같은데, 이미 너무 오래 산 것처럼 지쳐 버렸는데 아직도 스물둘이래. "-P.160 中에서

<파종>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자신을 돌봐준 오빠가 자신의 이혼 후에 자신의 딸 소리마저 잘 보듬어 준 오빠의 사랑을 뒤늦게야 절절히 깨닫게 된다.

<이모에게> 맞벌이 부모를 대신에 그녀를 돌봤던 이모에 대해 어느덧 이모와 닮아버린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가정 형편은 좋았으나 딸이 많다는 이유로 버려져 9살부터 식모살이를 했던 기남과 그녀의 가족 이야기에서 누군가에게 보살피는 직업들인 가사도우미나 보모와 같은 돌봄 활동의 직업을 대우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홍콩에 있는 딸 우경의 초대로 기남의 딸 우경 집에 헬퍼로 있는 제인을 보며 떠올린 자신의 어릴 때 생각들과 겹쳐지게 한다. 또한 우경의 아들 마이클의 따듯함이 기남의 상처를 위로해서 좋았다.

 

 섬세하고 예민한 감성으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나 또한 사랑을 하거나 받는 일에도 서툴어서 사랑을 한다는 것에 대한 여유가 없어서인지 내 어딘가에 닿진 않더라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