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독서노트

김금희-대온실 수리 보고서

오후의 체셔캣 2025. 6. 8. 13:54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사는 게 친절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하면 불친절이 불이익이 되지만 친절 없음이 기본값이라고 여기면 불친절은 그냥 이득도 손실도 아닌 '0'으로 수렴된다." - P.70 中에서

 

 "슬픔을 어떻게 질서화할까. 나이가 훨씬 들고 나서도 나는 그 부분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슬픔은 안개 같은 것이라서 서 있으면 스스로의 숨결조차 불확실해지는데." - P.201 中에서

 

 책에선 대온실 수리 공사를 맡은 건축사사무소 직원들과 과거 원서동 하숙집 동거인들 그리고 현재 석모도의 친구 은혜와 그녀의 딸 산아가 교차하며 나온다.

 

 영두는 창경궁에 있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아서 하는 중에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갑작스레 중학생 때 서울 원서동으로 유학 생활을 하게 되고 그 후에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어 석모도로 돌아와버리고 마음의 문도 닫게 되어 한동안 방황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영두에게 원서동 낙원하숙은 문자 할머니와 출퇴근하며 집안 일을 하는 딩 아주머니, 고시생 삼우 씨, 연극하는 유화 언니와 한방 쓰는 손녀 리사와 살았던 잊고 싶은 과거가 있다.

문자 할머니가 사망하고 리사는 자기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매정히 대하던 문자 할머니 유언을 꺾고 기어이 자신의 몫이라며 소송을 하고 받아낸다. 어디에나 있는 자기중심적인 리사를 보며 내 학창 시절의 빌런을 생각나게 했다. 아직도 내 밋밋한 뒤통수의 만져지는 커다란 혹이 그 증거이니 말이다.

묻어버리는 것이 얼핏 속 편한 것 같아 보여도 파헤쳐서 양지에서 꺼내어보아야 내가 받은 상처가 온전히 보일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치료를 하고 다음으로 나아가는 용기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과거와는 다르게 영두는 응시하며 진실을 파헤치고 나아가기 위해 대온실 지하 공간에 대해서도 소장과 대치를 하며 그곳의 묻힌 뼈와 잔류 일본인인 낙원 하숙집의 안문자 할머니가 겪은 일제 패망과 한국전쟁 같은 과거의 일을 알 수 있었다.

 

 끝으로 할머니가 해준 용궁 우화처럼 인간의 삶은 항상 취약하고 불안과 모순으로 점철된 상처투성이지만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시간이 언제나 흐르고 있기에 좀 더 나 자신과 타인에게 관용과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야 한다고 말이다.

 

 사실 <창작과 비평>이라는 잡지를 받아서 중간 부분을 읽고 책으로 나오면 읽어야겠다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고 만족한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