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독서노트

박연준-고요한 포옹

오후의 체셔캣 2023. 11. 11. 09:21

고요한 포옹

박연준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 최승자의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P.59 中에서 발췌한 글

 

 "우리의 삶은 대체로 너저분하게 굴러간다. 누군가 일상의 구질구질함과 밥벌이의 고단함, 인간관계의 불편함,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안고 산다. 그런 건 보이지 않거나 재미나게 포장되어 미디어에 노출된다.(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을 보라), 중요한 건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P.84 中에서

 

 "슬픔은 뜨거운 것이라서 포장하려 하면 포장지가 들러붙는다. 보기 좋게 세공하려 하면 내용물이 터져 나온다. 무언가 하면 할수록 슬픔은 원래 모양과 열기, 에너지를 잃는다. 이쪽에서 받을 수 있는 건 쭉정이처럼 가느다래진 슬픔의 그림자밖에 없다. 그렇다면 슬픔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생긴 모습 그대로, 들고 있던 형태 그대로 이쪽을 향해 내려두기. 그냥 두는 일이 최선이 아닐까? 두는 일이란 슬픔을 '보이는 일'이다." - P.198 中에서

 

"온통 쓰라리게 흔들리고, 흩어진 채 빛을 담으며, 해변의 끝자락에 아직 있어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내가 여기 조금 살아 있어요."

- P.222 中에서

 

 나는 얼마나 나에게 고요한 포옹을 해줄 수 있을까? 가만히 바스러지지 않게 부드럽고도 살포시 말이다.

매번 스스로에게 닥달하기만 하고 조그마한 잘못에도 나를 용서하지 않고 채근하며 나에게 더 화를 낸다. 그러곤 타인에게도 곧잘 내 잣대를 들이대려한다. 이제라도 그냥 나에게 좀 더 관대하고 괜찮다 하며 나에게 고요한 포옹을 하고 싶다. 내가 고양이를 바라보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