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슬픔이 택배로 왔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정호승
시인의 등단 50 주년 시집이다.
시인도 나이가 들어 슬픔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시어로 말하는 시인은 세밀하고 섬세하게 느껴진다.
제목처럼 택배로 도착한 슬픔은 슬픔에 찬 나를 슬프게 만들고 언론 기사에서나 실제의 불행은 택배처럼 예고 없이 갑작스레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말이다. 그럴 때마다 택배를 보지 않고 외면하거나 열어보고 싶지 않기에 포장된 네모반듯한 상자에 담긴 슬픔을 꺼내기가 무섭다. 그러나 노시인은 외면하지 않고 슬픔의 진실한 얼굴을 마주 본다. 그리하여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기로 마음먹는다. 이젠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많은 시인이 슬픔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기에 말이다. 나를 슬프게 만드는 이를 원망하기보다 그와 함께 슬픔을 나누려는 연대의 방식으로 말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일상을 살기 위해 모른 척 제쳐놓고 기계처럼 굴며 사랑과 진실과 배려를 모른 척 살아야 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이미 공정과 정의와 평등이 그 이름으로만 불리고 있고 쓰이지 못하기에 말이죠.
음 딴지를 걸려는 건 아니지만 요새 택배도 오늘 보냈어요. 내일 9~11시 사이에 도착합니다. 사진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등등 자세히 알려주셔서 느닷없이 오는 택배가 아니어서 시의 의미가 반감이 되더라고요.
택배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
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