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독서노트
김소연 -어금니 깨물기
오후의 체셔캣
2022. 10. 8. 12:55
어금니 깨물기
김소연
어금니를 깨물 정도로 사랑을 온전히 보게 하는 방식은 그저 참으라는 건가? 하는 반발심이 먼저 생겨버렸다.
뭐 가족이든 타인이든 때때로 꾸욱 참고 봐야 할 존재인 건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내가 참으면 그냥 넘길 일이라 생각을 하며 말을 하려다가도 도로 삼켜버리거나 완화시키곤 했다. 그러다가 결국 폭발하긴 하지만 말이다.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큰 결심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 그저 하루하루를 참고 살아내며 어제보다 손해 보지 않고 무탈하게 지나가는 것이 행복인 줄 알고 사는 데 급급한 나는 어쩌면 어금니를 무는 것처럼 참고 있는 것 같다고 예전 불교를 믿는 친구가 그리 말했다. 너무 참지 말고 살라며 그러다 화장한 후에 사리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황당한 소릴 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참긴 뭘 참느냐고 나 화도 잘 내고 입바른 소리도 잘하고 그러잖아! 그랬는데 그 후로는 더욱 말수가 줄어들었다. 꼰대짓 하면 안 된다고 해서 그냥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대세로 인해 충고를 안해서 말이다. 그 대신 흰소리를 많이 하긴 하지만 말이다.
시인은 가만히 수첩을 꺼내 종이에 무게를 더해 가라앉히는 중인가 보다.
불투명한 종이 위에 견디는 지난한 시간들을 서걱서걱 써 내려가서 무게추를 매달곤 침잠시킨다.
어딘가에 있는 심연 그 아래로 말이다.